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빅토르 유셴코 (문단 편집) == 평가 == 대통령 임기 기간 내내 자신의 반대세력 뿐만 아니라 지지세력의 견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오렌지 혁명]] 동지였던 [[페트로 시모넨코]], [[올렉산드르 모로즈]], [[율리야 티모셴코]]가 차례대로 유셴코의 곁을 떠나갔고 그에게 적대적이었던 친러 세력의 간섭과 정치적 급진파였던 티모셴코에 휘둘리면서 민심을 잃었다. 이는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 균형을 강조하면서 얻은 정치적 안정으로 경제 발전에 힘쓴 레오니드 쿠치마 전 대통령에 비교하면 여러모로 정치적인 소통 역량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많이 아쉬운 점이었다. 2004년 12%에 달하던 경제 성장률을 2005년 집권 1년만에 2%대로 추락시키는 등 과거 쿠치마 정부에서 총리로 재임하던 시절 보여준 경제 전문가의 위엄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고 오렌지 혁명으로 얻은 민심을 금세 잃었고, 경제가 어려워진 말년에는 우크라이나의 옐친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붙었다. 하지만 유셴코는 적어도 헌법 개정을 통해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쏠려있던 권력을 총리와 의회에 배분해 옛 소련 국가의 취약점 중 하나인 권력 집중을 막았다는 점[* 당장 대통령제가 가진 취약점을 이용해 권위주의적 정치를 펼친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과 [[블라디미르 푸틴]],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롬 카리모프]], [[타지키스탄]]의 [[에모말리 라흐몬]], [[투르크메니스탄]]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와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아제르바이잔]]의 [[헤이다르 알리예프]]와 [[일함 알리예프]] 부자(父子), 그리고 옛 소련권 국가는 아니지만 1950~1980년대 [[대한민국]]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을 생각해보자. [[발트 3국]]과 [[조지아]], [[아르메니아]], [[몰도바]], [[키르기스스탄]] 정도를 제외한 옛 소련권 국가 대부분이 독재로 흘러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크라이나는 지금까지도 민주주의 공화정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권력분립의 원리 하에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에서 평가할 부분이 적지 않은 인물이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집권기간 동안 많은 혼란기와 어려움을 보냈다는 점에서 평가가 엇갈리긴 하나, 우크라이나가 어느 정도 민주 국가로서 기능할 수 있게 한 바탕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유셴코에게는 인정 받을 만한 업적이 분명히 있다. 또한 [[유로마이단]]의 목표 중 하나가 야누코비치가 2010년 취소시킨 2004년 헌법개정안을 다시 되돌리는 것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결과적으로 그가 만든 헌법이 나라를 권위적으로 운영하던 야누코비치를 막아낼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유셴코는 우크라이나 민주주의에 나름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